설악산 신흥사, 통일대불, 사대천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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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마지막날, 원래는 속초나 설악산 해맞이 공원에서 일출을 보려했습니다.
일행이 일찍 일어나긴 했습니다만 콘도측에서 일출은 콘도에서도 보인다고 해서 근처에서 보려했지만
구름이 끼어서 그마저도 못봤습니다. 그래서 작당모의한 끝에 설악산 케이블카나 타고가자!!!!
그래서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서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케이블카 운영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설악산 신흥사를 들렸습니다.
설악산 신흥사는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에 있는 사찰로 삼국시대에 지어진 유서깊은 사찰입니다.
설악산 신흥사의 입구쯤에 세워져있는 통일대불과 내원법당 설명입니다.
통일대불 불상 뒤쪽에 보면 거대한 불상 아래쪽에 법당이 숨겨져있습니다. 전면에서는 안보입니다.
높이 14미터짜리 통일대불은 그 크기나 보여지는 외관이 굉장히 거대합니다.
설악산 신흥사 통일대불 사진
통일대불 뒤에서 바라본 모습.. 저 멀리 설악산이 보입니다.
통일대불 앞쪽에 소원을 기원하며 써내려간 많은 사찰 기와장이 보입니다.
통일대불을 뒤로하고 신흥사쪽으로 더 들어가면 계곡과 다리들이 나옵니다.
아래 사진이 신흥사 세심천 입니다.
신흥사 벽돌담입니다. 절 외부를 둘러싼 벽돌에 많은 담쟁이들이 있습니다.
신흥사 사천왕문입니다. 좌우로 두개씩 사천왕상이 있지만 아쉽게 하나밖에...
신흥사 입구의 사천왕문 현판입니다.
신흥사 내부의 종각입니다.
아래 사진들은 케이블카 내부에서 바라본 신흥사 내부 전경입니다.
역시 케이블카 안에서 바라본 설악산 신흥사 통일대불입니다.
앞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해서 보면 그 크기가 엄청납니다.
신흥사 내부 전경 사진
나중에 알게 된것들중 신흥사 극락보전, 부도군, 아미타여래좌상도 유명하다고 하는데... 케이블카 시간때문에 아쉽게도 못보고 왔습니다.
여튼 유서깊은 설악산 신흥사... 언제 한번 또 와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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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Story/풍경 야경] - 설악산 사진, 설악산 사진 모음
여행 마지막날, 원래는 속초나 설악산 해맞이 공원에서 일출을 보려했습니다.
일행이 일찍 일어나긴 했습니다만 콘도측에서 일출은 콘도에서도 보인다고 해서 근처에서 보려했지만
구름이 끼어서 그마저도 못봤습니다. 그래서 작당모의한 끝에 설악산 케이블카나 타고가자!!!!
그래서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서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케이블카 운영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설악산 신흥사를 들렸습니다.
설악산 신흥사는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에 있는 사찰로 삼국시대에 지어진 유서깊은 사찰입니다.
설악산 신흥사 [神興寺]
1984년 6월 2일 강원문화재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다. 《사적기(寺蹟記)》에 따르면 653년(신라 진덕여왕 7) 자장(慈藏)이 창건하고 석가의 사리(舍利)를 봉안한 9층사리탑을 세워 향성사(香城寺)라고 불렀다. 고기(古記)에 자장이 637년(선덕여왕 6) 왕명으로 당(唐)나라에서 불도를 닦고 귀국하여 건립한 사찰이라고도 전한다.
이 향성사는 701년(효소왕 10) 수천칸(間)의 대사찰이 하루 아침에 소실되고 앞뜰의 9층석탑도 화재로 파손되어 3층탑만 남았다. 그후 의상(義湘)이 이곳 부속암자인 능인암(能仁庵) 터에 다시 절을 짓고 선정사(禪定寺)라고 하였다.
선정사는 1000년간 번창했는데, 조선 중기 1644년(인조 22)에 다시 소실되고 말았다. 선정사가 불타자 많은 승려가 떠났으나 운서(雲瑞)·연옥(連玉)·혜원(惠元) 세 승려만은 유서 깊은 절이 폐허가 된 것을 가슴 아프게 여겨 재건을 논하던 중, 하루는 세 승려가 똑같은 꿈을 꾸었는데, 꿈에 향성사 옛터 뒤의 소림암(小林庵)으로부터 신인(神人)이 나타나 이곳에 절을 지으면 수만 년이 가도 삼재(三災)가 범하지 못할 것이라 말하고 사라졌다.
그래서 다시 절이 세워졌으며, 신의 계시로 창건하였다고 하여 신흥사라 부르게 되었다. 불상은 선정사 때 봉안된 것으로 의상이 직접 조성한 3불상의 하나이다. 당시 지은 법당·대웅전·명부전·보제루·칠성각 등의 건물이 현존한다.
중요문화재로 보물 제443호인 향성사지 삼층석탑과 그 밖에 순조의 하사품인 청동(靑銅)시루와 범종(梵鐘), 경판(經板) 227장, 사천왕상(四天王像) 등이 있다. -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1984년 6월 2일 강원문화재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다. 《사적기(寺蹟記)》에 따르면 653년(신라 진덕여왕 7) 자장(慈藏)이 창건하고 석가의 사리(舍利)를 봉안한 9층사리탑을 세워 향성사(香城寺)라고 불렀다. 고기(古記)에 자장이 637년(선덕여왕 6) 왕명으로 당(唐)나라에서 불도를 닦고 귀국하여 건립한 사찰이라고도 전한다.
이 향성사는 701년(효소왕 10) 수천칸(間)의 대사찰이 하루 아침에 소실되고 앞뜰의 9층석탑도 화재로 파손되어 3층탑만 남았다. 그후 의상(義湘)이 이곳 부속암자인 능인암(能仁庵) 터에 다시 절을 짓고 선정사(禪定寺)라고 하였다.
선정사는 1000년간 번창했는데, 조선 중기 1644년(인조 22)에 다시 소실되고 말았다. 선정사가 불타자 많은 승려가 떠났으나 운서(雲瑞)·연옥(連玉)·혜원(惠元) 세 승려만은 유서 깊은 절이 폐허가 된 것을 가슴 아프게 여겨 재건을 논하던 중, 하루는 세 승려가 똑같은 꿈을 꾸었는데, 꿈에 향성사 옛터 뒤의 소림암(小林庵)으로부터 신인(神人)이 나타나 이곳에 절을 지으면 수만 년이 가도 삼재(三災)가 범하지 못할 것이라 말하고 사라졌다.
그래서 다시 절이 세워졌으며, 신의 계시로 창건하였다고 하여 신흥사라 부르게 되었다. 불상은 선정사 때 봉안된 것으로 의상이 직접 조성한 3불상의 하나이다. 당시 지은 법당·대웅전·명부전·보제루·칠성각 등의 건물이 현존한다.
중요문화재로 보물 제443호인 향성사지 삼층석탑과 그 밖에 순조의 하사품인 청동(靑銅)시루와 범종(梵鐘), 경판(經板) 227장, 사천왕상(四天王像) 등이 있다. -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설악산 신흥사의 입구쯤에 세워져있는 통일대불과 내원법당 설명입니다.
통일대불 불상 뒤쪽에 보면 거대한 불상 아래쪽에 법당이 숨겨져있습니다. 전면에서는 안보입니다.
높이 14미터짜리 통일대불은 그 크기나 보여지는 외관이 굉장히 거대합니다.
설악산 신흥사 통일대불 내원법당
설악산 신흥사 통일대불 사진
설악산 신흥사 통일대불
통일대불 뒤에서 바라본 모습.. 저 멀리 설악산이 보입니다.
통일대불 앞쪽에 소원을 기원하며 써내려간 많은 사찰 기와장이 보입니다.
통일대불을 뒤로하고 신흥사쪽으로 더 들어가면 계곡과 다리들이 나옵니다.
아래 사진이 신흥사 세심천 입니다.
신흥사 벽돌담입니다. 절 외부를 둘러싼 벽돌에 많은 담쟁이들이 있습니다.
신흥사 사천왕문입니다. 좌우로 두개씩 사천왕상이 있지만 아쉽게 하나밖에...
설악산 신흥사 사천왕문
신흥사 입구의 사천왕문 현판입니다.
신흥사 내부의 종각입니다.
아래 사진들은 케이블카 내부에서 바라본 신흥사 내부 전경입니다.
역시 케이블카 안에서 바라본 설악산 신흥사 통일대불입니다.
앞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해서 보면 그 크기가 엄청납니다.
설악산 신흥사 통일대불 전경사진
신흥사 내부 전경 사진
나중에 알게 된것들중 신흥사 극락보전, 부도군, 아미타여래좌상도 유명하다고 하는데... 케이블카 시간때문에 아쉽게도 못보고 왔습니다.
여튼 유서깊은 설악산 신흥사... 언제 한번 또 와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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