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어느 가을밤, 어렸을적 고향 이야기를 꿈꾸며


9월의 어느 가을밤

2004년 9월의 어느 가을밤...
오늘 날씨 참 춥다. 낮 2시쯤? 오후부터 갑자기 비가 내리면서 추워졌고...

방금전 11시넘어서 혼자 커피한잔 마시고 들어왔는데, 긴팔입구 나갔는데도 추웠다.
이제 정말로 가을이 시작되려나보다. 낙엽이 지기시작해야 진짜 가을일텐데 ㅋㅋ
가을이 돼면 많이 생각나는게 시골 할아버지댁이다. 대천, 지금은 보령시 ㅇ_ㅇ
할아버지댁과 외할머니댁은 차타고 한.. 20분?
할아버지댁이 보령시 청라면, 외할머니댁은 청양 화성. 시는 달라도 가는건 금방이다.
어렸을적엔 봄방학때나 여름방학, 겨울방학때 그 두집을 내집으로 삼고 살았었다.
나랑 내 동생도 그랬고 친척 누나 동생들도 다 마찬가지로.. 방학때는 다 모여서 놀았다.
시골집 달력에 집에 갈날짜에 동그라미 쳐놓고 몇밤남았네 몇밤 남았네 세기도 하고..
근데 어렸을땐 시골 가고 오는 그 차안이 너무 싫었다. 직행 또는 직통버스를 주로 타고 다녔는데
버스만 타면 멀미가 왜 그렇게 나던지;; 항상 검정 비닐봉지는 가지고 탓고,
귀미테 나 판테롱인가? 멀미약들도 붙이고 먹고.. 난리였었다.
어린맘에 그 멀미가 너무 싫어서, 시골가는것도 싫었고
그 끔찍했던 버스안에 퀴퀴한 냄새와 기름냄새와 마른 오징어 구이 냄새가 싫었다.
그것때문인지 지금도 마른 오징어는 싫어한다. 아직도..
오징어 회나 다른 가공식품이나 반찬같은건 먹는데 그 커다란 통째로 말린 그 오징어.. 싫어!!!!!
여튼 그 무서운 고통의 버스를 타고 시골에 내리면 대천시내.. ㅡ.ㅡ;
시내라고 해봐야 정말 쪼끄만.. 롯데리아도 몇년전에 생긴 대천인데.. 나 어렸을적엔 오죽했으랴..
거기서 시내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한시간정도 달리다 내리면 할아버지댁이다.
내린다고 바로 앞이 아니라 냇가 하나 건너고 3-40분은 더 걸어들어가야 비로소 도착한다.
지금이야 다리 길어서 금방 가지만 어렸을적엔 그길이 참으로 멀게 느껴졌다.
아침에 집에서 출발하면 오후에나 시골에 도착하는 그 길, 어렸을적엔 힘들었다. 그리고 싫었다.

방학때 시골에 한번 가면 보통 1-2주는 놀다가 오는데, 무서운게 몇가지 있었다.
할아버지댁은 몇년전까지는 전통가옥이었다. 나무와 흙으로 지은 그런 전형적인 시골집.
비오는날은 나가놀지도 못하니 나무마루에 앉아서 고구마나 먹으면서 멍하니 밖만 보고..
그러다 지쳐서 방안에 들어가 누우면 들리던 비오는 소리들.
차소리도 없고 라디오나 그런 잡소리도 없이 오직 떨어지는 비소리들만 들리고
그러다 잠이 들곤 했었지. 비오면 딱히 할일이 없었으니...  
무서운게 있었는데, 저녁때부터 해가 져서 밖에 나가 놀기도 힘들고, 특히 잘때는 작살이다.
집안에 불을 끄고 누우면 전혀!! 아무것도 안보였다. 눈을 떠도 감아도 칠흙같은 어둠뿐..
밖에 달빛이라도 밝으면 정말 환한데 그것조차도 없으면 완전어둠이었다.
가끔 방전을 일으키는 형광등의 깜빡거림뿐...
그렇게 쥐죽은듯이 누워있으면 무지 무서웠다. 시골이라 귀신도 많을거라고 생각했고..ㅋㅋ
이러다 아프면 병원은 어떻게 갈까.. 도둑은 들지 않을까..
집 앞에 조그만 산이 있는데 여우굴이라고 낮에도 무서워서 놀러 못가는 그곳.
거기사는 여우가 내려와서 자는 사이에 간을 빼먹지는 않을까 하는 참으로 어린 생각들..
겨울엔 창호지문 밖이 밝았더랬지. 달빛에 비친 눈때문에 겨울엔 그나마 환했었다.
밤에 컴컴할때 마당 한쪽에 키우는 소와 멍멍이 짖는 소리만 어쩌다 들려오고...
마을 어디에선가 한마리가 짖으면 마을 전체의 개들이 다 짖기도 하고. 어디 도둑있나 하면서
이불 뒤집어쓰고 자던 기억들.. ㅋㅋ 무서운게 머가 그리 많았던지..
시골에 밤은 반딧불도 많았더랜다. 여기저기 켜져있는 조그만 불들.. ㅋ
한번은 외가에서 자고 있는데 이모가 한밤중에 깨우셧다.
그때 외가에 뭔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많은 식구들이 있었는데 깨고 나니 식구들도 다 깨어있었다.
그러면서 문밖을 쉿~ 하는 시늉과 함께 가르키길레 졸린눈을 비비며 봤더니....
난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도깨비불을 봤었다. 달 밝은 밤에 도깨비불 여러개가
마당 가운데쯤 떠서 왔다갔다 하는데 무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 기억은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지금이야 도깨비불이 귀신이 아니란건 알지만
그 많은 가족들이 주위에 있는 덕분에 배째고 봤던 도깨비불.. ㅋㅋ

나 어렸을적에 외가엔 외할머니와 함께 막내외삼촌이 있었다.
지금은 외국사람과 결혼해서 서울에 살고 있는 외삼촌. 흠.. 어렸을적엔 외가에 가면 꼭 있었다.
그 외삼촌은 산을 돌아다니면서 꿩이니 산토끼니 노루니 이런거 맨날 잡아오셧다.
덫도 많이 놓았었고, 매일 그 덫 손질하러 공기총 들고 진짜 사냥꾼처럼 산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갈색의 살아있는 산토끼 한마리를 잡아오셧는데, 가죽을 벗기던 것, 고기를 아궁이 숯에 올려놓고
굽던것, 외조카 여자애가 피 뚝뚝 떨어지던 아직 안익은 그 고기를 맛있다고 먹던것..
참 많은 추억들이 있다. 지금은 대학에 다니는 숙녀가 되어 있는 샛별이와 초롱이 고 얌체같은것들;;
외가쪽에도 조카들과 형 누나들이 참 많은데 이젠 다 커버려서리.. 같이 놀기도 뭐하다.
외가 앞에 커다란 저수지가 있었는데 태풍오기전에 항상 물을 다 빼곤 했었다.
그 큰 저수지에 물을 다 빼면... 정말 엄창나게 물고기가 많이 나오곤 했었는데 ㅋㅋ

할아버지댁에선 놀거리다 참 많았다. 키에 맞지도 않는 커다란 자전거 타다 넘어질때도 있었고..
농수로에 가서 물고기 잡고, 이산 저산 다니며 칡뿌리 캐먹거나 저수지에 가서 우렁도 잡고 물놀이도하고
철마다 열리던 많은 열매들도 따먹고..특별히 하는것도 없었으면서 즐겁던 어린시절.
할아버지댁 뒷산에 밤나무, 감나무, 배나무, 앵두나무, 사과나무 등등 별별 나무들이 많아서
과일걱정은 안했다. 심지어 우리들을 위해서 참외나 수박도 심으셧던 할아버지셧으니깐...
여름이면 매일같이 좀 큰 냇가에 가서 그물로 물고기 잡기도 하고.. 물놀이도 매일 하고..
몇일에 한번씩 오는 과자파는 트럭이 오면 이름도 희귀한 과자들 사다먹기도 하고..
저녁때쯤엔 오케스트라같은 개구리 울음을 들으면서 마당 평상에 누워서 과일도 먹고..
시골의 밤하늘은 왜그렇게 밝고 별들도 많은지.. 누워서 보고 있으면 쏟아질거 같은 느낌들.
지금도 시골가면 밤하늘에 별들이 참 많은데.. 사람은 변하는데 별은 그대로.....
겨울이면 뒷산에 올라가서 멀쩡한 길을 썰매길로 만들어서 사람들도 못돌아다니게 만들구.
여름에 놀던 냇가와 저수지는 썰매장이 되버리고.. 사촌들과 눈싸움도 하고..
겨울엔 자고 일어나면 거의 온세상이 다 하얗게 변해있었다. 눈이 자주 많이 내렸었지.
그 사촌들도 지금은 다 커버려서 직장다닌다. 그놈들이 그 옛날처럼 놀지는 않겠지.
요즘엔 시골에 가면 어렸을적 몰려다니던 놈들이 담배피러 몰려다닌다. 허허....
놀러다니지도 않고 온종일 집안에서 테레비만 보고.. 쪼그만 녀석들은 우리 어렸을때처럼
산이며 냇가로 놀러다니고 있다. 인생이 그런게지..
뒷산에 파져있는 참호같은 것들이 6.25때 판거라는 얘기도 듣고..
어느집은 누가 자살해서 근처에 가지 말라느니.. 어디 저수지에 누가 빠져죽어서
근처에 가면 부르니까 가지말라느니.. 옆산에 여우, 저 뒤뒤산에 호랑이..그런 얘기도 많았다;;
초가집 시절에 키우던 소는 어디갔나? -ㅅ-; 기억이 안나네.. 잡아무긋낭....
가스나 연탄도 없던 시절, 태우던 솔잎들과 마른 나뭇가지들. 밥때만 되면 마을 여기저기서
피어오르고, 낮 내내 돌아다니며 놀다가 그 연기 보고 집에 들가구...
특히 겨울엔 그 온돌방이 왜 그렇게 뜨뜻~하던지.. ㅋㅋ
명절때 같은 날은 그 좁은 시골집에 20명 넘는 사람들이 다 들어가있어서 복잡하기도 했었지.
우리 어렸을땐 조용한 시골 마을에선 항상 무법자였다.
일 저질러도 항상 용서받았다... 어린 꼬맹이들이라는 이유로 ㅇ_ㅇ
남의 집 호두를 다 따가질 않나.. 이거저거 깨먹고 도망가고, 그랬지. 그랬었지...

어느덧 20년이란 세월이 지나가버렸다. 길도 좋아져서 시골가려고 맘만 먹으면 한시간 반이면 간다.
하지만.. 그 무섭던 멀미도 안하게 됐는데..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안가려고 했었다.
가뜩이나 외가댁은 폐가가 된지 오래되었고.. 할아버지댁도 이젠..... 우릴 반겨줄 사람이 없다.
할아버지댁을 가도 이젠 아무도 반겨줄 사람이 없다. 아무도..
우리가 대천에 도착했다고 전화하면 도착하기 몇십분 전부터 나와계시며 껴안아주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다 돌아가셧다. 에띠... 기분 꿀꿀해지네.
두분다.. 우리를 정말 사랑해주셧는데.. 어느덧 내가 머리굵어지면서 시골도 자주 못가고..
지금은... 시골에 가면.. 그 옛날에 아줌마 아저씨는 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있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무덤안에 누워계신다. 반겨줄 사람이 없다.
할아버지가 가꾸던 밭과 조그만 과수원은.. 사람 마음도 모른채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고,
가을이면 금색으로 물결치던 그 논들은 물조차도 다 말라있다.
녹슨 농기구들과 비어있는 비료푸대들 바라보면 괜히 서글퍼진다.
할아버지 할머니 돌아가셧을땐 눈물도 안흘렀는데, 지금은... 왜이렇게 보고 싶을까....
시골가면 손붙잡고 얼굴 비벼주실 그 두분이 이젠 사진으로밖에 볼수가 없다.
돌아가신지 몇달 되지도 않았는데 시골 생각만 하면 울컥 슬퍼진다.
이젠 보고 싶어도 볼수가 없다. 가고 싶어도 볼사람이 없다. 반겨줄 사람조차도...
시골집과 우리가 놀던 그곳들은 모두 다 추억속에 묻히겠지. 성묘할때다 가기는 가겠지 아마도.
얼마전까지 아파트 근처에서 우는 개구리 소리를 들으면 그 옛날 시골집이 가끔 생각나곤 했다.
너무 시끄러워서 매일같이 돌던져대던 그때 그곳..
매일 밤마다 자기전에 할머니한테 집에 가려면 몇밤 남았어요? 하면서 묻던 그곳.
조금씩 나도 나이먹으면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우리를 위한 그 맘을 조금씩 알것같다.
아니 안다기보다는 지금도 느껴지는것 같다. 그때의 그분들의 마음을 느끼는것 같다.
할머니 할아버지 살아계실때..... 잘해드릴껄.. 항상 후회는 늦는법..
오늘은 왜이렇게 그분들 목소리가 듣고 싶을까나.
20년쯤 전으로 돌아가보고 싶은 밤이다~~~~~

이미지 맵

'Life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전 글 다음 글